29일 오전 경기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 수확을 기다리며 고개를 숙인 황금색 벼로 가득한 들녘에 난데없는 트랙터 굉음이 퍼졌다.
시동을 건 트랙터 3대가 논으로 들어가 무르익은 벼들을 뭉개기 시작했다.
저마다 머리에 빨간 띠를 질끈 둘러맨 농민 100여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1700여㎡ 크기의 논을 둘러쌌다.
한여름 폭우를 견디고 우뚝하게 자란 벼들은 트랙터가 지나간 뒤 힘없이 진흙 속에 묻혔다.
일주일 뒤에는 '대왕님표 여주쌀' 포장옷을 입고 전국에서 여주쌀의 맛을 자랑했을테지만 올해는 거름에 불과한 신세가 돼버렸다.
'쌀값은 농민값 생산비를 보장하라!'는 빨강색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황금색 들녘에 상처를 냈다.
씁쓸히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교종씨(46)는 "병충해만 들어도 내 자식 잃은 듯 마음이 아픈데 내 자식을 내 손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심정은 농사꾼 아니면 이해 못한다"고 했다.
이씨는 "저 트랙터 한 대 값만 3600만 원이고, 농사 지으려면 기계비만 1억 원은 족히 든다"며 "농사지으면 지을수록 적자가 나니 기계비를 갚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여주농협은 올해 수매가격을 아직 책정하지 못했다.
여주 가남미곡종합처리장(RPC)의 경우 지난해에는 5000톤을 수매해 수확 전인 9월 말까지 재고를 모두 소진했지만 올해는 29일 현재까지도 800톤의 재고를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RPC 관계자는 "올해는 작황이 좋아 작년보다 생산량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수매량은 작년과 별 차이가 없겠지만 가격은 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와 더불어 경기도의 고품질 쌀 주산지인 이천지역 농민들도 쌀값 폭락에 힘겹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마(40㎏)당 6만8000원선이던 '올벼(조생종 햅쌀)'의 수매가격은 올해 6만3000원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천농협은 지난해 6만9000원으로 전국 최고가였던 수매가격을 5~15% 가량 내리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농협은 현재 2400톤의 재고를 떠안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회 이천시연합회는 RPC통합과 판매창구 단일화 등 구조개선을 촉구했다.
또 이천쌀 자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역 차원의 대책과 함께 대북지원용 쌀 40만톤 매입을 법제화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논 갈아엎기를 진행한 여주군농민회 신동선 회장도 "쌀대란의 원인은 의무수입량 증가와 쌀소비 감소, 생산량 증가에 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고 쌀값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농민들은 추수한 곡식을 등에 지고 아스팔트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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