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 개보수 붕괴위험 도사려 손도 못대
“이제 와서 헌집 고쳐 쓰라는데 무너질까봐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경기 수원시의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성곽을 담장 삼아 자리 잡은 남수동은 봄비의 상쾌함을 느낄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평민들이 어울려 성 바깥보다 비교적 살기가 괜찮았던 곳,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난민들의 정착촌이었던 남수동에는 30~40년 이상 된 낡은 집들이 60%를 넘어 도심 속 슬럼가로 전락했다.
창룡문에서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과 창룡문길 사이에 있는 남수동 일대 1200여 세대 주민들은 도시기반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마을에 다닥다닥 붙어살고 있다.
집 개보수는 물론,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봉돈1길에 사는 윤명예(64·여)씨는 35년 된 화장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기보수공사도 10년 전 한전에서 해주고 난 뒤 한 번도 손본 적이 없다.
2평 남짓한 부엌 천장은 습기로 곰팡이가 얼룩져 있었고 벽 전체는 금이 가 있어 지붕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
누수 방지를 위해 나무판자, 돌, 플라스틱 등 가릴 수 있는 건 모두 지붕위에 얹어 놨지만 전날부터 내린 비가 방안
으로 흘러내렸다.
윤씨는 “집에 물새는 것만 아니면 좀 살 것도 갔겠구먼 사는 게 참 엉망이여""라며 “시에서 돈 없어서 못 헌다는데 어디서 전세라도 살게 헐렸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지난 1997년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동시에 남수동 일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였고 2003년부터는 건축물의 신·증·개축이 금지됐다.
주민들은 수원시가 화성성곽 주변 낙후지역을 정비한다며 지난 2006년부터 추진한 ‘남향특별계획구역 정비계
획'에 따라 보상 받을 날만 기다리며 그간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왔다.
곧 보상이 이뤄지고 집들은 헐릴 것이라던 약속은 2년이 지나서야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 11월 수원시와 함께 2년여 동안 사업을 추진해온 주공측이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들어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시는 낡은 집을 개보수해서 살라고 했다.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집이 통째로 무너져 내릴까봐 공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40년째 거주하고 있는 전칠호(81·여)씨는 “우리처럼 다산 늙은이들은 헐려도 그만 안 헐려도 그만인데 젊은 애들은 어찌 사나""라며 “이제 수리는 해도 된다고 하는데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는 집들 천지여""라고 말했다.
최대자(76)씨는 “보상을 해 준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어디 가서 딴 집을 얻을 수나 있겠어?""라며 “우리네야 여기서 그냥 보수공사 하고 살아야 하는데 보수할 돈도 없지만 또 언제 헐겠다고 할지 몰라서 그냥 살고 있어""라고 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시가 정비사업무산에 따른 현실적인 보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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