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발전시대의 수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그 구조적 근간은 아직까지 과거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국가 주도적인 산업정책과 부족한 부존자원의 극복을 위한 수출주도적 산업구조 등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후에도 관성적으로 사회전반에 상당부분 침윤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특성이 항상 순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국가의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관료들에 의해 수립되고 집행될 수 있었던 성공적인 산업정책들은 경제적 예측이 더욱 복잡해진 오늘날 경제의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오히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적은 부존자원으로 시작되었던 수출주도형 전략은 그간 추진되는 과정에서 서비스 분야의 고부가가치 산업구조와는 거리가 먼 산업구조의 고착화를 가져 오게 된다.
국내의 경제적 구조와 더불어 국제적인 통상환경의 변화도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통상질서는 주로 양자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구분된다. 사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양자주의적 통상질서에 주목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오히려 다자주의적 무역질서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해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냉전이란 체계가 서구의 선진적 자본주의국가들에 대한 한국의 수출을 어느 정도 용이하게 하였고 동시에 미국이 주도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체제도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에게는 상당한 예외와 호혜적 통상환경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자주의적 질서가 냉전의 붕괴에 따라 국가간 무한경쟁이라는 논리가 우선되고 한국의 경제적 위상변화에 따른 국제사회의 책임분담 요구가 높아지면서 그 동안 다자질서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국가적 이익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생존을 위한 대안적 전략 채택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한 국가들과의 FTA 확대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앞에서 상술한 한국경제와 국제통상환경의 변화가 단순히 통상다변화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발전국가적 관성과 구체제적 산업구조가 과연 통상다변화만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오늘날 국제통상질서의 변화가 양자주의의 확대로만 극복할 수 있는 파고인가? 물론 아니다. 국가 경제구조의 개혁과 다양한 통상질서에 관한 동시다발적 고려가 선행되어야 함은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한다.
우선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국가가 아닌 시장이 나서야 한다. 발전국가체제 이후에도 벤처산업, IT산업 등에 대한 국가주도적 산업정책을 지속했을 정도로 강한 국가간섭의 관성은 위험하다. 어떤 분야가 미래의 경제적 부를 산출할 수 있을지는 경제적 동기에 더욱 민감한 시장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시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지만 국가는 그 위험관리부문에서는 적극적인 노력을 취해야 한다.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면서도 공정한 질서와 계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시장의 역할을 국가는 국가의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건전하고 효율적인 국가경제구조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신성장 동력을 찾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통상질서도 다양한 형태를 구상해보아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동시다발적 FTA만이 능사가 아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라는 중요한 교역상대국과의 FTA는 경제적 고려, 국민인식 등의 문제로 시작되지도 못했거나 그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다. 이 같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주의적 통상질서의 구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FTA의 허브로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한·중·일 지역주의 구축의 경제적 규모와 효과보다 크다고 장담할 수 없다. 더불어 도하개발아젠다 등 보편적인 통상질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성공 사례로서 한국은 다자주의적 통상질서 구축에 저개발국과 선진국 간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매개자인 동시에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상정책은 국익과 직결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방법론적 다양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아직 신아시아 구상이 구체적 정책으로 발전되지 않은 시기이다. 그렇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시의성 있는 판단과 방향은 유지하면서 정책구상에 관한 논의와 정책대안에 관해서 열린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물실호기(勿失好機)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인식 그리고 국제환경에 대한 냉철한 판단으로 그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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