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 난무… 순식간 아비규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9-01-20 19: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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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경찰, 물대포 발사에 철거민들 끝까지 격렬 저항 19일 오후 10시께 서울 용산 일대. 경찰들은 인근의 전 골목을 봉쇄하고 있었다. 경찰은 5개 중대 400여명이 동원됐다. 같은 시간 전국철거민연합회원들은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40명과 중대 용산병원 앞의 100여명, 남일당 건물 맞은편에 약간명 등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당초 이날 오후 10시께 강제해산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간간히 점거자들이 돌을 던질 뿐,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20일 오전 6시께 경찰이 본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수차와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병력이 18개 중대로 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오전 5시58분께에는 건물 앞 대로의 교통을 통제하는 등 압박을 강화했다.

철거민들은 화염병과 골프공으로 응수했다. 구호를 외치는 듯 했으나 주위 소음에 묻혔다. 오전 6시5분께 경찰은 살수차를 전진배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때 점거인들은 10여개의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건물 앞 대로는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엉켰고, 살수차는 지체없이 남일당 5층을 겨냥했다. 오전 6시10분께 상황이었다.

점거인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건물 일대는 화염병이 난무했고, 수십개의 골프공이 날아다녔다. 이에 경찰은 오전 6시25분께 크레인을 설치하고, 30여명의 병력을 2층으로 투입, 강제해산에 나섰다. 이어 28분 경고방송이 울려퍼졌다.

곧바로 경찰은 컨테이너박스에 경찰특공대 10여명을 태우고 옥상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2층에 있던 병력은 3층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의 진압 시도는 계속됐고, 일대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오전 6시53분께 경찰은 컨테이너박스를 통해 경찰특공대를 다시 투입했다. 철거민들은 전날 자신들이 지어놓은 파란색 가건물 안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전 7시 이후 건물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물대포 등의 진화작업과 함께 주위는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극렬하게 대치하던 중 오전 7시39분께 한 명이 건물에서 끌려나왔다. 경찰은 연행자를 순식간에 에워싸 버스에 태웠다. 뒤이어 한명이 더 연행됐다. 경찰은 그즈음 연행자들을 이동시키기 위한 길을 만들어 기자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같은 시간, 옥상에 진입한 경찰특공대는 끝까지 저항하는 철거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오전 7시46분께 점거인 3명은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며 구호를 외쳤다.

이즈음 3층으로 진입했던 병력들은 이미 4층 유리창을 부수고 있었다. 경찰의 포위망이 이미 좁혀진 상황이었다.

경찰특공대 6명은 철거민 3명을 제압하기 위해 옥상 난간에서 아찔한 육탄전을 벌였다. 대로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걱정의 목소리가 터졌다. 이들 3명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컨테이너 박스에 태워졌다. 오전 8시께 연행자는 5명으로 늘어났다.

8시 이후 불길이 잡히고, 건물은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즈음 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용산소방서 측은 “사망자 1인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오전 8시20분께 경찰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경찰은 건물 일대를 철저히 봉쇄했다.

오전 8시30분께 4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용산소방서 측은 “불에 타 죽었고, 아직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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