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 ▲ 시상수 지부장 |
운전을 하다 보면 묘한 암묵지가 존재한다. 이 정도는 끼어들어도 되고, 이 정도는 끼어들면 안 된다는 일종의 무언의 약속이다. 수많은 운전자들이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질서에 가깝다.
문제는 그 약속이 깨질 때다. 들어가야 할 때 머뭇거리거나, 빠져야 할 때 욕심을 내거나, 끼어들어서는 안 될 순간에 무리하게 끼어드는 순간 사고 위험은 급격히 높아진다. 도로 위 많은 갈등과 사고는 결국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균형감각을 잃는 데서 비롯된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낄끼빠빠’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이다. 다소 가벼운 표현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이 개입해야 할 순간과 물러서야 할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감각, 다시 말해 상황에 맞는 균형감각이다.
법령 체계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개입해야 할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면 현장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필요한 영역까지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제도의 목적을 해칠 수 있다.
‘화재예방법 시행규칙’ 제27조는 강습교육 강사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안전원 직원, 소방기술사, 소방시설관리사, 소방안전 관련 학과 부교수 이상, 관련 분야 석사학위 취득자, 5년 이상 근무한 소방공무원 등이 그 대상이다.
그런데 제30조를 보면 실무교육 강사의 자격을 별도로 규정하면서 제27조와 동일한 내용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제1호 안전원 직원부터 제6호 소방공무원, 그리고 제7호인 “제1호부터 제6호까지에서 규정한 사람 외에 소방안전관리업무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소방청장이 인정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내용이 동일하다.
두 조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별개의 규정으로 둘 실익을 찾기 어렵다. “실무교육 강사의 자격에 관하여는 제27조를 준용한다.” 한 줄이면 충분하다. 같은 내용을 여러 조문에 반복하면 향후 개정 과정에서 누락과 불일치의 위험이 커진다. 법령이 길어진다고 반드시 좋은 법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간결함 역시 좋은 입법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강사의 자격 자체를 시행규칙에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특정 전문기관에 교육을 위탁하는 경우에는 교육시간, 교육과목, 평가기준 등 큰 틀만 법령에 규정하고, 세부적인 운영 기준은 위탁기관의 규정에 맡긴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문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물론 모든 경우에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약 동일한 교육업무를 여러 기관이 수행하는 복수 지정 방식이거나,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등록제 또는 신고제로 운영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육기관 간 품질 편차를 막고 최소한의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강사 자격, 시설기준, 운영기준 등을 법령에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소방안전교육은 그런 구조가 아니다. 국가가 전문성과 공공성을 갖춘 특정 전문기관에 교육업무를 위탁하여 수행하는 체계다. 그렇다면 법령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 교육과목과 시간 등 핵심 사항을 정하는 데 집중하고, 강사 운영과 같은 세부 사항은 위탁받은 기관의 전문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국가가 신뢰하여 맡긴 기관이라면, 어떤 전문가가 교육 내용에 가장 적합한지를 판단할 최소한의 재량 역시 함께 부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늘날 소방은 독립된 전문영역인 동시에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종합학문이다. 화재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는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화학, 건축학, 응급의학, 재난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요구된다. 따라서 소방교육 역시 특정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규정은 강사 자격을 지나치게 소방 중심의 틀 안에 가두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응급처치 교육이다.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의사다. 특히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외상 전문의는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현행 규정을 보면 의사는 강사 자격요건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예외규정도 존재한다. 제7호는 “제1호부터 제6호까지에서 규정한 사람 외에 소방안전관리업무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소방청장이 인정하는 사람”을 강사로 위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응급처치를 가르치는 의사가 원칙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를 강사로 활용하기 위해 예외규정을 검토해야 한다면, 무언가 순서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자연스럽게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 오히려 예외규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누군가는 “어차피 제7호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외규정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법령에 자격요건이 구체적으로 열거되면 실무자는 그 범위 안에서 사람을 찾게 된다. 기관 역시 감사와 지도점검을 의식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결국 법령은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현장은 스스로 문을 좁게 사용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물론 모든 디테일이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정교한 디테일이 필요하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시험의 응시자격, 시험방법, 합격기준, 부정행위자 처분과 같은 사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규정은 국민의 법적 지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법령에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엄격한 기준이 곧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운영의 영역은 다르다. 현행 ‘화재예방법 시행규칙’ 제28조와 제31조는 강습교육과 실무교육의 과목, 시간 및 운영방법을 각각 별표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27조와 제30조의 강사 자격 규정은 삭제하고, 필요한 사항은 교육 운영방법을 규정한 별표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교육기관의 장은 교육 내용의 특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분야별 전문가를 강사로 위촉할 수 있다”는 정도의 원칙만 제시하면 충분하다.
통제해야 할 영역은 엄격하게 통제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좋은 제도가 갖추어야 할 균형이다. 좋은 법령은 모든 곳에 끼어드는 법령이 아니다. 개입해야 할 곳에서는 엄격하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곳에서는 과감히 물러설 줄 아는 법령이다.
도로 위에서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운전이 사고를 줄이듯, 법령도 개입해야 할 곳과 물러서야 할 곳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법령 체계에도 결국 ‘낄끼빠빠’가 필요하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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