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 둥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4-30 17: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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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황조롱이’ 갈데 없었나 마포구(구청장 박홍섭) 성산2동 대림아파트 108동 17층 베란다에 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 한쌍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높은 절벽에 집을 짓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조롱이가 고층건물에 둥지를 튼 사례는 드문 일이다.

구 관계자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황조롱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이 새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인근 난지도나 밤섬의 자연생태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집 주인인 임민상(49·구청 광고물팀장)씨는 지난 2월말부터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집주변을 맴돌았다고 전한다.

임 씨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아침 베란다 쪽에서 새 울음소리가 나, 무슨 일 인지 확인하려 유리문을 열자 그 새가 황급히 날아올랐고 오랫동안 방치된 화분(지름 35㎝, 높이 30㎝)에 메추리알 크기 만한 알 하나가 화분 위 나무조각과 마른 잎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임씨 가족은 조류도감을 뒤적이고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수소문한 결과 이 새가 보호조인 황조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암컷은 지난달 14일까지 알 3개를 더 낳아 알을 품고 있으며, 수컷은 먹이를 구해오거나 건너편 아파트에서 주위를 감시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진객(珍客)을 맞은 임씨 가족들은 그 후 조그만 인기척에도 놀라는 새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베란다에 빨래 너는 것도 포기하고 실내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가족 모두가 “귀한 손님이니 만큼 모두 무사히 부화해서 날아갈 때까지 돕겠다”는 데 생각을 모았기 때문이다.
마치 황조롱이가 집주인이고 임씨 가족이 세입자가 된 듯한 상황이 됐다. 이 때문인지 새들은 하루종일 알을 품으면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있다고.
최은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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