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터 미대사관 숙소 ‘해법’ 없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9-09 18: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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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각서 파기 대체부지로 뚫어라” 주한 미대사관측이 오는 2006년까지 서울시 중구 정동 10의1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 연면적 5만4000평(지상 15층, 지하2층)의 대사관 건물과 54가구 규모의 직원 숙소용 8층 짜리 아파트, 군인숙소 4층 짜리 건물을 짓겠다며 지난 5월 건설교통부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대해 시민단체들은 ‘문화주권’을 앞세워 저지운동을 벌이는 등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알아봤다.

■왜 문제가 생겼나
현재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아파트 건립 논란은 미 대사관이 현재 세종로 건물이 낡고 비좁다는 이유로 덕수궁 터에 대사관 건물과 직원 숙소를 건립하겠다며 건설교통부에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한데서 비롯됐다.

주택건설촉진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당초 계획대로 미 대사관과 직원용 아파트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529대 분의 주차면적과 놀이터 등 부대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미 대사관측은 대사관 건물과 직원 아파트가 붙어 있기 때문에 주차수요가 116대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적용대상인 만큼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 대사관측은 서울시의 이같은 불가방침에 대해 외교공관의 특수성을 감안, 해당 아파트가 시행령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건교부에 시행령 개정 요청 및 외교통상부, 문화관광부 등에도 협조를 구하고 있다.

■아파트 건립장소는 어떤 곳
경제정의실천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문화개혁시민연대, 한국청년연합회 등 40여개 시민단체 모임인 ‘덕수궁 터 미대사관 및 아파트 신축반대 모임’에 따르면 미 대사관측이 아파트를 세우려는 장소는 조선시대 태조와 선왕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이 있던 곳으로 덕수궁에서도 신성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이곳을 관통하는 길을 뚫어 덕수궁으로부터 분리시켰는가 하면 선원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경성제일고등학교(경기여고 전신)와 동양척식회사의 총재 사택을 세웠다.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패망한 후 이 땅은 미 군정에 귀속됐고 48년 미국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후 86년 염보현 전 서울시장과 리처드 워커 주한 미대사가 체결한 ‘재산교환양해각서’에 따라 미국측은 경기여고 부지를 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소유였던 을지로 미 문화원과 송현동 직원 숙소의 부지 일부와 39억원의 현금을 서울시에 넘겼다.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활용, 상습적인 교통정체 지역이던 한국일보사 앞 도로를 확장하고 미 문화원 건물은 현재 자료실로 사용하고 있다.

미 대사관 측은 95년까지 경기여고 자리에 새 건물을 지어 옮길 계획이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계속 미루어 오다 최근에야 예산을 확보했다. 또 종로구 송현동의 직원용 숙소 부지는 2년 전 국내 기업에 팔았으며 내년 7월까지 비워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의 반응
시민단체들은 ‘문화주권 수호차원에서 덕수궁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아파트 건립 반대 서명운동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덕수궁 처 미대사관 및 아파트 신축반대 모임은 서울시와 정부가 옛 덕수궁 터를 재매입하고 덕수궁을 비롯한 정동 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해 특별관리를 해야 하며 대체부지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옛 궁궐 터였던 덕수궁 터 지하에 유물이나 유적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조사하는 문화재 지표조사를 한번도 실시하지 않고 미 대사관저로 편입된 점과 양해각서가 체결된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서울시에 양해각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문화재 지표조사 실시가 미 대사관측의 아파트 건립을 위해 협조하는 것 아니냐며 분개하고 있다.

윤경로 아파트신축반대 모임 공동대표는 “우리 문화를 지켜내자는 취지에서 반대하는 것이지 단순히 반미감정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태가 꼬인 데는 정부가 1980년대에 옛 경기여고 교정을 미 대사관 부지로 제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단견과 무책임에 원인이 있다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문화재 보호를 우선할 것인지, 외국과의 약속 이행을 앞세울 것인지 정부가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해결방안은
개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재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문화재 매장 여부와 관계없이 덕수궁 터에 외국 대사관이 들어서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정부에 국가사적지와 서울시 유형문화재 등이 있는 덕수궁을 비롯한 중구 정동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해 특별관리해 줄 것과 미 대사관 아파트 예정부지를 재매입하고 대체부지를 마련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대해 서울시는 덕수궁터의 미대사관 신축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 문화재법이나 주택건설촉진법 등 관련법령에 따라 정부 관련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처리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덕수궁은…
덕수궁이란 궁명은 조선시대 초부터 있었던 이름으로, 양위한 태조의 소어궁을 정종이 개성에 건립해 덕수궁이라 한 데서 비롯됐다.

그 후 태종이 서울로 재환도하면서 지금의 창경궁 부근에 태조의 궁을 세웠을 때도 역시 덕수궁이라 했다. 현재의 덕수궁은 원래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했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보니 한성 내에는 거처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황폐돼 이곳에 행궁을 정하고 정릉동행궁이라 했다. 이후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와 선원전, 함녕전, 보문각, 사성당, 준명당 등을 축조하면서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준명당에는 고종황제가 거처하기도 했고, 한때 고종의 초상화와 순종의 초상화가 봉안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 사절들을 영접한 곳이기도 했다.

<사진1>◆인터뷰-반대시민모임 공동집행위원장 천준호
“주재국의 왕궁 터 위에 대규모 외교공관단지를 만드는 경우는 세상에도 없습니다. 당시 미 대사관과 재산교환양해각서를 체결했던 서울시 공무원들의 무지가 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덕수궁 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의 천준호 공동집행위원장(사진)은 미 대사관 아파트 건립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그동안 느꼈던 점을 이같이 말했다.

천 위원장은 아파트 건립 반대는 반미감정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자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위해 반대하는 것이지 단순히 미국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밝히고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논의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미 대사관측의 문화재 지표조사 요청에 협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동일대는 우리 근대사의 교육장이라고 할 만큼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이지만 공무원 및 시민들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지금 이 지역은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정체성과 긍지를 세우자고 밝혔다.

천 위원장은 “이번 문제는 서울시와 정부가 새로운 대체부지를 마련하고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다그쳤다.
/권태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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