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권-생존권 싸움’ 치닫는 노점상 현주소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9-04 17:54:44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해법 한계 전담부처 신설 해결을” <사진1>논란이 끊이지 않는 노점상 문제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상인들은 생존권을 외치며 거센 단속에 맞서 분신자살을 하고 있고, 관할관청은 제재조치를 취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며 용역업체까지 동원하는 등 단속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달 19일 영등포구청에 노점상인들이 몰려와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등포지역 노점상 대치현황을 통해 전체 노점상 문제를 짚어 본다.
<편집자주>

◆ “생존권 차원의 권리를 찾으려 했을 뿐이다”
전국노점총연합 영등포지구장인 이병로씨에 따르면 이번 항의 방문은 지난 19일 이른 아침 단속직원과 용역업자 30여명이 영등포시장에 들이닥쳐 이씨와 주변 상인의 노점을 강제 철거함으로써 시작됐다.

더구나 이씨는 이 자리에서 용업업체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벌거벗겨진 채로 30분쯤 머리를 땅에 박고 있어야 했다. 자신의 리어카를 압류하려는 지게차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고 수치스러웠다”며 “자신이 아닌 주변의 다른 상인이 항의를 했더라도 같은 모욕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용역직원들은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아무도 나설 수 없을 정도의 일방적인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 날 오후 이씨와 동료 노점상인 12명은 구청을 방문해 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용역업자 및 구청 직원들과 거친 몸싸움이 있었고, 또 다시 이들에 의해 자신의 웃통이 벗겨지자 이번에는 스스로 자신의 하의까지 벗어 항의를 표시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 후 이씨는 시장으로 돌아가기 전 연합회 차량에 탑승했다가 구청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 “다음에는 꼭 면담을 하자”는 말을 스피커로 흘렸다. 바로 이때 경찰에 연행됐고, 함께 했던 상인들은 5만원의 과태료를 주고 풀려났으나 자신은 집시법 위반으로 계류상태에 있다고 이씨는 밝혔다.

하지만 이씨는 불법시위를 주도한 적이 없고,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해 한 상인이자 개인으로서 구청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법적용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상인들은 물건이 압류되면 물건을 되찾기 위한 과태료 지불은 물론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고발장까지 날라와 2중, 3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씨는 이 날 전국노점상협회에서 400여명의 상인들이 동원된 사실에 대해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확산되는 기업형 노점상 문제에 대해서는 “영등포 지역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 “보다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최소한의 보행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단속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영등포 시장 주변의 경우 노점상들이 물건을 길가에 항상 적치해 두고 있고 한 두번 제재를 가해도 달라지지 않기에 강력한 조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노점상인들의 19일의 구청 항의방문과 관련, 구 관계자는 노점상이 대규모화 및 과격화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전국노점상협회에서 400여명의 상인이 구청을 찾아 항의를 했고, 8대의 스피커 차량이 구청 앞에 동원됐다. 이들의 소음과 거센 항의 때문에 업무를 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며, 경찰이 나서지 않았다면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구는 현재 보행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또 압류한 물건은 상인이 요구하면 바로 내줘야 하는 입장이고, 행정적 규제조치를 가해도 효과가 없기에 단속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구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구가 이 지역 노점상을 집중 단속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구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보도통행 불편으로 인한 민원이 3년 연속 전체 민원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지난달 14일 현재 관내 총 553개의 노점상 정비대상 중 60% 가량인 317건(영등포로-137건, 양평로-155건, 경인로-25건)이 영등포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또 버스정류장이나 택시 승강장 주변에 설치된 노점들을 피해 시민들이 차도로 통행하다 사고가 났을 경우 관할 관청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단속이 강화되는 이유중 하나다.

생계지원 프로그램 등 노점상 지원을 위한 구청측 노력도 당사자들의 외면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도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다. 시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시 전체에 1만8000여개의 노점상이 있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2월부터는 과태료를 ‘현행 5㎡이하 5만원, 이후 1㎡마다 1만원씩 추가’에서 ‘1㎡이하 5만원, 1㎡초과당 10만원씩 추가’로 대폭 올려 적용했다.

시에 따르면 지난 6월 월드컵에 대비, 간선도로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등 시민불편 노점을 중심으로 총 4314개를 1차로 집중 정비했으나, 한 달도 안돼 70~80%의 노점상이 생계유지라는 이유로 재발생됐다.

시 담당자는 “노점상의 형태가 기업형으로 몸집이 커지고, 항의 형태도 과격해지는 추세이며, 예전에는 노점상인들이 돈을 벌면 가게를 임대해 제도권에 들어왔으나 세금을 내지 않는 점을 악용해 계속 노점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을 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 “생존권과 행정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전국노점상연합회측은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등 불안정 고용에 따른 구조적 요인 ▲상인들이 대부분 빈곤계층인 점 ▲인터넷의 발달로 증가한 민원이기에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 ▲노점상 지원대책이 실질적이지 못한 점 등을 들어 노점상 문제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했다. 연합회측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점상의 합법화 등을 고려하고 행정적 문제 뿐 아니라 상인들의 생존권 문제도 동시에 감안해 균형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관할 구청은 단속업무의 효율성을 감안해 업무 자체를 사법권이 있는 경찰에 이양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해에 노점상문제로 민원이 3만여건이나 접수됐으며, 이에 따라 ▲법령 개정 ▲기업형 노점상에 대해 대처방안 등을 검토했으나 보고할 중앙부처가 없어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며 “우선 노점상 문제를 총괄해 통일된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적인 중앙부처 부서가 마련되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2>인터뷰-이병로 노점총연합 영등포지부장
“노점상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해결돼야 합니다.”

전국노점총연합 영등포지부장이자 영등포시장에서 티셔츠를 판매하는 노점상 이병로씨(51·사진)는 지난달 19일 노점상 단속과정에서 구청측 사람들에 의해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이같은 해결안을 제시했다.

이씨는 충남 청양출신이고, 아들 둘이 있는 가장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기 때문에 배우지도 못했고, 따라서 막노동부터 술집에 이르기까지 궂은 일을 하면서 생활해 왔다. 이씨가 처음부터 노점상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생선가게나 철물점 등을 운영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빚을 지게되면서 거리로 나서게 됐다.

주변 노점상인들의 생활 역시 그가 자라온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씨는 “노점상인 중 대부분이 빚으로 허덕이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러한 현실때문에 상인들은 몸이 아파도 설사 단속반이 온다해도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도로보행권을 확보하는 행정적 차원에서 단속만 강화하는 것은 결국 상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부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씨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가 이해당사자간 사회적 합의로써만이 해결이 가능하다며 전국노점총연합이 조직된 배경을 설명했다.

의정부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단속이 펼쳐질 때 견디지 못한 상인 몇 명이 지역구 문희상 국회의원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때, 함께 있던 문의원의 어머니는 “내가 너를 노점상을 하면서 키웠다”며 “저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결국 문의원의 중재로 노점상 대표는 의정부 시장과 만나 서로의 의견을 절충, 보다 좋은 환경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지부장이 원하는 해결은 바로 이러한 방식이다. 2년 전부터 경기대를 다니며, 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 지부장. 자신을 못살게 군 그 법을 가지고 영등포 노점상들의 복지를 챙기겠다는게 그의 유일한 목표다.
/선태규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