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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5-07 18: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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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 서초구 내곡동 산 13의1 대모산 자락에는 헌릉과 인릉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970년 5월 사적 194호로 지정된 헌릉과 인릉을 합쳐서 헌인릉이라고 부른다.

<사진1>♠헌릉-병풍·난간석 둘러 연결
헌릉(獻陵·사진)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년)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년)의 무덤이다. 이 능의 면적은 411여평이며 세종 2년(14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으며 1·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정종 2년(1400)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지제도와 조세제도, 군사제도를 정비했으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등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해 조선 초기의 민생안정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릉의 무덤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라 쌍릉으로 조성됐으며 무덤 아랫부분은 병풍석으로 두르고 각 무덤에 난간석 12칸을 둘러 두 능을 서로 연결시켰다.

또한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인석·마석 등을 배치했으며 이는 고려시대의 현릉·정릉, 조선시대의 후릉에 세워진 것보다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춘 것이다.

세종 2년(1420년)에 원경왕후가 승하하면서 광주 서대모산을 무덤지역을 정했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에 따라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했다.

<사진2>♠인릉-무덤앞 문-무인석 섬세
인릉(仁陵·사진)은 헌릉 오른쪽에 위치하며 23대 순조대왕(재위 1800∼1834)과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대신 정치를 돌보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외척세력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했고 이후 신유박해, 홍경래의 난 등이 발생해 민심이 불안해졌다.

인릉은 일반적인 단릉과 같이 혼유석(무덤 앞에 놓은 직사각형의 돌) 1좌만 있는 2실로 합장했다. 또한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 12칸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 상석, 망주석을 세웠다.

무덤 앞에 세워진 문·무인석의 조각은 사실주의 기법을 이용해 섬세하고 아름답다. 문인석의 높이는 260cm로 안면에 약간 미소를 띠고 있으며 무인석은 높이 277cm 정도로 투구의 돌출문양이 뚜렷하며 발의 앞뒤, 가운데에는 보주 3개를, 양옆에는 보주 5개를, 그 사이에는 십자형의 보주 5개씩을 각각 표시했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원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재실은 무덤과 같은 지역에 있는데 헌릉·인릉의 재실은 서로 떨어져 있다.
/황선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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