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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4-22 18: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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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사진1>♠와룡묘
중구 예장동에 있는 와룡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군인이며 정치가인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으로 서울시 민속자료 5호.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선조 36년(1605년)에 평안도 영유현에 공식으로 창건돼 역대 제왕이 제문을 지어 보내거나 사액의 예도 전하고 있을 만큼 중요한 사당이었다.

경내에는 와룡묘 외에 단군묘, 제석전, 약사전, 삼성각 등이 있고 소장품으로는 제갈공명과 관운장의 석고상이 있는데 각각 둘레가 2m, 높이 2.5m이며 기타 대북·소북·종등이 있다.

와룡묘는 조선시대 말 엄상궁이 세웠다는 설이 있는데 1924년에 불탄 것을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34년에 재건하고 이름도 와룡묘로 지었다고 한다.

와룡묘 전체는 중국 도교의 전래뿐 아니라 우리나라 무속의 독특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당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2>♠숭정전
중구 장충동 동국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면 ‘정각원(正覺院이)’이라고 쓴 현판이 걸린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각지붕 건물이 있는데 바로 왕들이 정사를 돌보던 숭정전이다.

이 건물은 원래 종로구 신문로 2의2에 위치했던 경희궁의 정전(正殿)을 일제때 이전해 놓은 것으로 주춧돌과 기둥이 둥근 것이 특징이다.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세운 경희궁의 정전(正殿)으로 남쪽에 숭정문, 동쪽에는 여춘문, 서쪽에 선추문, 북쪽에는 자정문이 배치돼 있었다.

순조 29년(1829) 경희궁에 대화재가 일어나 회상전, 융복전 등은 소실됐으나 다행히 숭정전은 피해를 면했다. 경희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서울의 5대 궁궐의 하나로서 조선 후기의 역대 왕들이 머물면서 정사를 돌보던 곳이다.

광해군은 신문로 2가의 색문동(塞門洞)에 왕기가 서린다는 ‘색문동 왕기설’이 나돌자 풍수지리설을 눌러 왕위를 보전하기 위해 이곳에 경희궁을 세웠다가 광해군 15년(1623)에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권태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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