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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4-17 09: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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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사진1>▶절두산 순교성지
한강의 정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절두산 순교성지는 사적 제 399호로 마치 누에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해서 예로부터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렸지만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의 대량 처형장소가 된 후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천주교회측은 1956년부터 합정동 96-1 양화나루 일대 4120평을 매입하기 시작, 1962년에는 순교자 기념탑과 노천제대(露天祭臺)를 설치하고 1966년에는 천주교박해 100년 기념사업으로 순교자기념관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신부의 동상,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 순교한 성녀 쥬리아의 묘비를 세웠다.

순교자기념관은 건평 100여평의 규모로 순교자들의 돌조각상과 교계 선구자들의 유필, 유물, 고문할 때 사용됐던 각종 형구들을 비롯해 대원군의 눈초묵화, 병인양요때 프랑스군대가 그렸던 한강수심도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오는 9월 성지 내에 완공되는 순교자기념 교육관에는 납골당인 ‘부활의 집’이 조성될 계획이다.

한편 천주교순교기념관은 서울시에서 선정한 외국인을 위한 시내 주요관광코스로도 포함돼있다.

<사진2>▶망원정
마포구 망원동의 동명이 유래된 망원정은 양화나루 서쪽에 있는 서울시기념물 제 9호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조선시대 왕손들이 풍류를 읊던 곳이다.

망원정은 1425년 태종이 농사형편을 살피려 형 효령대군이 기거하던 마포에 거동했다가 효령대군의 별장인 정자에 올랐을 때 마침 비가 내려 들판을 흡족히 적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정자 이름을 희우정(熹雨亭) 이라고 불렀다.

이후 1484년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소유로 바뀌게 되자 월산대군은 정자를 보수해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름을 망원정(望遠亭)이라 했다.

성종은 세종 때의 예에 따라 매년 봄·가을 이곳에 거동해 농사의 정도를 살피고 문인명사들과 시주(詩酒)를 즐겼으며 형인 월산대군이 죽은 후에는 정자를 다시 찾지 않았고 한다. 이어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해인 1506년 연산군은 창의문 밖 탕춘대에 호화찬란한 탕춘정을 짓게 하고 한강변에 있는 망원정을 크게 확장할 것을 명하고 이름도 수려정(秀麗亭)으로 고치게 했다.

그러나 그 해 9월 중종반정으로 모든 확대공사가 중단되고 철거됨에 따라 망원정은 본래의 경치 좋은 모습으로 남게 됐고 명사들이 시를 읊는 명소로 바뀌었다. 또 이곳은 주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됐으며 잠두(현 절두산)와도 가까워 잠두로 가는 길에 들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1925년 을축년 홍수로 소실된 적이 있으나 1991년 복원돼 조선시대 수려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애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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