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구 문화재 탐방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4-10 1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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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사진1>♤선바위
종로구 무악동 산 3의4에 있는 선바위. 이 바위의 형상은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선자(禪字)를 따서 선(禪)바위라 불렸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도성(都城)을 쌓을 때 당시 왕도후사(王都後事)를 감독하던 문신 정도전(鄭道傳)과 왕사(王師)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 바위를 성안으로 하느냐 성밖으로 하느냐로 크게 의견대립을 보였다.

선(禪)바위를 도성내에 넣으면 불교가 왕성해 유신(儒臣)이 밀려날 것과 성외로 내놓으면 승려가 맥을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얼른 결정하기 어려워 ‘오늘은 늦었으니 편히 쉬고 내일 다시 의논하자’고 해 두사람의 언쟁을 일단 말렸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 눈(雪)이 내렸는데 기이하게도 한양도성 쌓을 자리에만 눈이 녹지 않아서 하늘의 뜻(天意)에 의한 성터라고 태조 이성계는 생각했고 마침내 선바위는 성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한양도성(서울성곽)을 설성(雪城)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사진2>♤삼청동 병기고
고종 20년(1883)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내에 설립된 조선시대의 유일한 무기제조공장. 고종 18년(1881)에 김윤식(金允植:후일 외무대신이 됨)을 영선사(領選使)로 명해 중국 톈진[天津] 기기국(機器局)에 38명의 공학도를 파견, 신식 무기와 과학기계의 제조법을 배우게 했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이들이 귀국할 때 기증받은 많은 과학기술 서적과 구입한 신식기계들을 바탕으로, 고종 20년(1883) 종사관(從事官) 김명균(金明均)이 데리고 온 톈진 공장(工匠) 4명과 함께 건립한 것으로, 한국 최초의 신식 무기공장이다. 청나라로부터 조총기기(造銃機器)·내찬혈기(內鑽穴機)·세포기(細砲機)·제약기(製藥機) 등을 구입, 무기와 화약을 생산했다.

이 건물은 1984년 해체보수공사 때 발견된 사사 이응익이 쓴 상량문에 의하면 고종 21년(1884) 6월 9일에 건축된 것. 무기의 근대화를 위해 새 제도를 강구하고 근대식 군사훈련과 무기제조를 하던 곳이다. 이 병기고의 명칭을 번사창이라고도 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으로 문을 닫았다.
/권태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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