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넘어 인천이 보이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3-28 18: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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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정랑고개’ 백제 초기에 한성(지금의 양천구) 한강변에서 육로를 이용해 바다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을까? 그 당시 해산물과 소금 확보를 위해 꼭 지나쳐야 했던 길이 하나 있었다.

‘옛날 장안에서 인천까지 걸어가는 지름길의 첫 고개이며, 그 옆은 ‘성넘어’라 부르는 곳으로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길이다’ 양천구 신정3동 금옥여고 와 신트리 택지지구 사이에 있는 정랑고개의 비석에 새겨진 글이다.

양옆으로 계남공원이 펼쳐져 있는 정랑고개는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먼 옛날 이 곳에 왕릉을 정하려 했다는 데서 ‘정릉(定陵)고개’라고 불렀다.

물론 한동안 정랑고개, 정년고개, 신트리고개 등 이름이 분분했으나 1985년 주민들이 논의 끝에 고개이름을 ‘정랑고개’라 정하고 이 지역에서 채취한 자연석 ‘깨묵돌’로 고개비를 세웠다.

정랑고개 옆 야산을 오래 전부터 ‘성넘어’라 불렀는데 이 일대에서 토성(土城)의 흔적과 소나무 숲 속에 토축이 남아있는 것에 따라 야산계곡을 인위적으로 막아 축조한 성임을 알 수 있다. 이 성터를 신기(新機)성터-신트리성터라 불렀다.

문화재관리국의 조사에 의하면 이 토성은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우선 문화재관리국 감정 결과 출토된 토기편이 삼국시대 초기의 것이라는 점과 출토된 유물의 시기나 규모가 백제 초기와 연관이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 성은 당시 한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지형상 백제 위례성과 연계할 수 있고 위치상 통신이 가능하며 동쪽으로 한강변을, 서쪽으로는 부천과 인천으로 통하는 길을 감시 할 수 있는 요지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정랑고개는 양천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로 경인철도가 나기 전만해도 소금짐이 드나들던 고갯길이었지만 지금은 양천의 대표적인 고개로서 학생들의 통학로가 되고 있다.

한편 현재 지명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신트리’는 정랑고개 아래 있는 마을로 600여년전 지도에 신기(新機)라고 표기됐을 만큼 유서 깊은 마을이다. 신기는 ‘새로운 터에 형성된 마을’이란 뜻이다. 이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신터리-신틀이-신트리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최애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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