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은 한강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요즘 등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만 한강유역의 평야지대를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탈전을 버리던 삼국시대에는 더없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당시 아차산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백제는 풍납토성(風納土城)과 몽촌토성(夢村土城)과 함께 중요한 군사거점인 아차산에 산성을 지었다.
사적 제234호인 아차산성(阿且山城)은 6각형에 가까운 약간 긴 평면에 전체길이가 1.2㎞ 내부면적은 약2만5000평 규모의 성이다. 동쪽벽과 서쪽벽은 지형적인 여건을 적극 활용해 능선을 따라가며 축조되었고, 북쪽벽과 남쪽벽은 경사면에 기대어 쌓은 석성이다.
아차산을 중심으로 북쪽 성곽과 남쪽 성곽이 외향이 다르고 고구려 유물과 백제유물이 동시에 출토되어 아직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백제가 건설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아차산성은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유역의 평야지역을 놓고 치열한 전투가 많이 벌어 졌던 곳으로 슬픈 일화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475년 개로왕이 한성을 포위한 3만 여명의 고구려군과 전투 중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후 자신은 아차산성 밑에서 고구려군을 맞아 장렬히 전사한 일화와 우리에게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로 잘알려져 있는 온달장군도 신라군과 전투를 벌이다 이 산성에서 최후를 맞이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차산이 해발 300m로 야트막한 산이라 주민들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어 시민공원으로 조성돼 많은 사람들이 아차산성을 찾았으나.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본격적인 산성 복원 및 발굴이 진행되고 있어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아차산성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아차산성 주위의 수많은 고분들과 온달샘 탐.
온달장군 주먹바위 등의 유적들이 있어 자녀의 손을 잡고 잠시나마 삼국시대로의 여행을 위해 아차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김성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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