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중기 건축 변천사 한눈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3-20 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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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개화산 ‘약사사’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을 마주보고 있는 강서구 개화산 북쪽 기슭 중턱에 자리잡은 약사사. 조선 순조 이전까지 개화사라 불렸던 약사사는 1827년 노후 된 절을 새로 건축하면서 약사여래를 모셔 이때부터 약사사로 불렸다. 이 사찰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후기에 쓰여진 ‘양천읍지’에 창건설화와 함께 신라사찰로 기록돼 있다.

옛 기록에는 절의 위치를 개화산봉대하(開花山烽臺下)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국방에도 연관이 있던 중요한 곳으로 추정된다.

약사사가 유명한 것은 단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사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약사사에는 서울시 문화재인 석불과 석탑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약사사 경내에 안치된 약사여래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40호로 높이 3.3m, 어깨폭 90cm규모의 화강함으로 만든 고려말기의 석불.

석불의 본래 형태는 기단(基壇)을 마련하지 않고 아래쪽은 지하에 매몰되었으나 법당으로 이전하면서 기단석을 새로 만들어 석불을 올려놓았다. 석불의 두 볼은 풍만한 편이며 코와 볼이 약간 손상된 흔적이 있지만 그런 대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툼한 두 눈과 가는 미소를 머금은 엄숙한 입술은 매우 인상적이며 연꽃을 든 채 앞가슴에 단정히 모으고 있는 두 손과 어깨에서부터 겹치며 내려온 법의는 위엄을 풍기고 있다.

머리부분에는 원형모양의 석조보관을 놓았는데 보관(부처 머리에 씌운 왕관)밑 부분에는 상당수의 명문(銘文 금석등에 새긴 글)이 있으나 판독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또 하나의 문화재인 석탑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39호로 4m 규모의 3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고려의 불교 미술이 다소 퇴화하던 고려 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탑으로 고려중기의 탑 건축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약사사 앞 뜰 석탑 왼쪽에 있는 약수터는 개화산 내에 위치해서 인지 꽃이 만발하는 5∼6월이 되면 약수물도 단맛을 내고 이때 약수의 효능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어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애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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