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은 이제 그만

시민일보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6-04-30 22: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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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 시상수 지부장

 

운전면허를 딴 지 5년이 넘도록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이른바 ‘장롱면허’였다.


어떻게 면허를 땄는지 떠올려보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직각주차를 하려면 조수석 손잡이를 주황선 앞에 맞추고, 핸들을 끝까지 돌린 뒤 어느 지점에서 다시 풀어야 한다는 식의 요령들. 머리로는 아직도 기억난다.

“연애의 기본은 기동력”이라 했던가. 그렇게 지금의 짝꿍은 과거의 나를 운전석에 앉혔다. 결국 운전 연수를 시작했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왜 운전 연수가 ‘관계 파괴’의 주범이라 불리는지.

적당히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우리의 교육은 과연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 있는 사람’만 양산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 교육시간은 늘어났고 과정은 세분화됐다. 실습 교육기자재 역시 실물 설비형에서 디지털 콘텐츠형까지, 외형만 보면 완성에 가깝다.

그런데도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소방안전관리자의 1차 대응 미담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대부분의 현장에 소방안전관리자가 없는데 무슨 대응이냐”고.

그 말은 틀린 지적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지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그들은 과연 대응할 수 있도록 길러지고 있는가.

현장은 솔직하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은 부족하다. 이 간극은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무교육 이수기한을 배운다. 기준도 알고, 조문도 기억한다. 그런데 조건을 대입하거나 상황이 바뀌는 순간 손이 멈춘다.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재는 충분히 잘 설명하고 있다. 법령을 풀어주고 기준을 정리해준다. 그러나 그 결과 남는 것은 ‘무엇을 아는가’이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아니다.

그래서 교재는 바뀌어야 한다. 설명 대신 조건을 제시하고, 조문 대신 판단을 요구해야 한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 보게 해야 한다. 개인의 판단, 팀의 토의, 그리고 다시 판단. 교재는 더 이상 설명서가 아니라 판단을 훈련하는 도구여야 한다.

실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 해보고 끝난다. 손으로 만져봤지만 다시 하려면 멈칫한다. 지금의 실습은 ‘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해봤다는 경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교육 인원은 많고 기자재는 부족하다. 개인은 순서대로 한 번씩 수행하고 실습은 그렇게 지나간다. 이 구조에서는 결과가 분명하다. ‘해봤다’는 기억은 남지만 ‘할 수 있다’는 확신은 남지 않는다.

실습 역시 바뀌어야 한다. 소방시설 운용은 한 번이 아니라 반복으로. 수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과 재수행으로. 개별 경험이 아니라 팀 단위의 역할 순환으로. 조작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바꿔가며 반복할 때 비로소 행동은 몸에 남는다. 실습은 체험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자동화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서식 작성과 비상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빈칸을 채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는 순간 다시 멈춘다. 왜 그렇게 썼는지, 어떤 판단으로 결정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바뀌어야 한다. 조건이 있는 시나리오, 개인의 판단, 팀의 토의, 그리고 다시 작성.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가 드러나는 과정으로.

결국 하나로 모인다. 좋은 교육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 위의 고수는 다르다. 어떤 이는 위기를 엮어내듯 피하고 어떤 이는 3초 앞을 미리 보고 움직인다. 그러나 그 차이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반복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까지의 반복, 판단이 생각보다 먼저 나올 때까지의 반복.

소방안전교육도 다르지 않다. 설명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해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알고 있는 장롱면허’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 없이 대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설명에서 판단으로, 체험에서 반복으로, 개별 수행에서 팀 기반 대응으로.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대응은 바뀌지 않는다.

운전은 설명으로 배우지 않는다. 반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멈추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교육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그럼에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을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장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은 남겠지만 정작 현장을 지켜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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